일 | 월 | 화 | 수 | 목 | 금 | 토 |
---|---|---|---|---|---|---|
1 | 2 | 3 | 4 | |||
5 | 6 | 7 | 8 | 9 | 10 | 11 |
12 | 13 | 14 | 15 | 16 | 17 | 18 |
19 | 20 | 21 | 22 | 23 | 24 | 25 |
26 | 27 | 28 | 29 | 30 | 31 |
- 훈춘
- 국악TV개국을 응원합니다
- 김대건신부9차서신
- 청대썰매
- 카륜
- 卡伦
- 김대건 신부
- 김대건신부서한
- 우리들은 썰매를 타고
- 역점
- 驛占
- 국악TV개국 국민청원
- 김대건신부 소팔가자
- 김대건신부9차서한
- 김대건신부
- 위험한 훈춘기행
- 김대건신부 9차서신
- 김대건신부 영고탑
- 김대건신부 9차서한
- 長柵
- 김대건신부 송화강
- 마첸호
- 김대건신부편지
- 김대건신부훈춘
- 소팔가자
- 시간의종말
- 김대건 신부 소장 지도
- 송화강을 떠나
- 국응사
- 김대건신부 이동 경로
- Today
- Total
목록이동경로/청시대 교통로 (2)
김대건신부9차서신연구
김대건신부 9차서한중 청대 당시의 역로 역점 서술내용 [마침내 우리는 영고탑 근처에 있는 ‘마첸호’(Ma-tsien-ho)'에 도착하였는데, 6백 리 떨어진 바다에까지 이르는 길이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.7~8년 전만 해도 도중에 여행자들을 받아들일 만한 집이나 초막이 하나도 없었습니다. 길손들은 떼를 지어 가야 하였고 또 밤이 되면 그 자리에서 야영을 하여 호랑이들을 쫓기 위해 아침까지 불을 계속 피워야 하였습니다. 그러나 지금은 객줏집들이 행길까에 들어서 있었습니다. 그 객줏집들이란 나뭇가지와 그 줄기들을 포개 놓고, 그 사이에 난 아주 큰 구멍들을 진흙으로 메워서 원시적으로 지은 큰 초가들입니다. 그것을 건축한 사람, 그리고 지금은 연기에 그을린 이들 숙소에 사는 집주인들은 이 지방 말로 ‘쿠앙쿤체’..
위 이미지: 청시대 역로 모습 “길림통지”57권에 의하면 길림에서 산싱(혹은삼성 三姓) 역참과 기타 각 역참사이의 거리는 , 길림우라(乌拉)역으로부터 세개 역참을 거쳐 텅어얼저쿠역(腾额尔哲库)에서 갈라져 부도통(三姓副都统) 소재지에 이를수 있다. “텅어얼저쿠역에서 갈라져 80리면 몽고카룬(卡伦)역 (지금의 길림성,위수현타이안향신짠촌, 라린하지류 카차하좌안) , 70리면 라린둬환역(지금의 흑룡강성 우창현 훙치향 둬환촌 ‘혹은 오상현 홍기향 다한촌’ ), 70리면 사쿠리역(지금의 흑룡강성 아성현 성남 약20리의 쌍풍향 쌍란촌), 65리면 비커투(费克图)역(지금의 아성현 비커투(蜚克图)향소재지), 82리면 사이러버터쿠(塞勒佛特库)역(지금의 흑룡강성 빈현빈안진),61리면 버스헝(佛斯亨)역(지금의 흑룡강성 무란현..